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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안민(輔國安民)의 슬로건을 내세운 전봉준
운영자   2004-03-04 13:12:21 13768
전봉준

1854∼1895.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의 지도자로 어릴 적 이름은 명숙(明叔), 호는 해몽(海夢)이고, 유난히 몸이 왜소하고 키가 작다해서 녹두라 불렀고, 녹두장군(綠豆將軍)의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지금의 정읍군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를 지낸 전창혁(全彰爀)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달 만에 죽음을 당하자 사회 개혁에 뜻을 품게 되었다. 처음 집안이 가난하여 안정된 생업이 없이 약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방술(方術)을 배웠다.
태인 산외리 동곡 마음에 옮겨 자리잡았을 때에는 다섯명의 가솔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스스로 선비로 자처하면서 세마지기의 전답을 경작하는 소농이었으며, 이 무렵 농사일 외에 동네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훈장이로 생계를 보태기도 하였다.

30여 세때에 동학에 들어가 동학의 제2세교주 최시형 아래에서 고부지방의 동학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동학은 경천수심의 도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동학은 사회개혁의 지도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1892년(고종 29) 새로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趙秉甲)이 농민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양민의 재산을 빼앗는 등 온갖 부정을 자행하고, 만석보(萬石洑) 밑에 다시 보를 축조, 불법으로 700섬의 수세(水稅)를 징수하였다. 이에 농민 대표와 함께 그 시정(是正)을 진정했으나 거부당하자 94년 1월 1,000여 명의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관아(官衙)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여 강탈당했던 세곡(稅穀)을 농민에게 배분하고 부패한 관원들을 감금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정부는 조병갑 등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이용태(李容泰)를 안핵사로 삼고, 용안현감 박원명(朴源明)을 고부군수로 임명하여 사태를 조사, 수습케 했으나 민란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돌려 체포, 투옥, 살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는 등 동학교도 탄압과 탐학을 자행하였다.
이윽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인근 각지의 동학주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궐기를 호소하였다. 고부에 인접한 태인(泰仁), 무장(茂長), 금구(金溝), 정읍(井邑), 부안(扶安) 등지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봉기, 8,000여 명이 고부 백산(白山)에 모였다. 이로써, 민란은 전반적인 동학농민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금구, 부안을 점령, 전주를 향해 진격 중 황토현(黃土峴)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계속 정읍, 고창, 무장 등을 장악, 4월 28일 전주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淸軍)이 인천에 상륙하고 동시에 톈진조약(天津條約)을 빙자하여 일군(日軍)도 입국하여 국가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의 선무(宣撫)에 응하기로 결정하고 탐관오리의 응징, 노비의 해방, 토지균분제 실시 등 12개 조목의 시정개혁(施政改革)에 대한 확약을 받고 휴전을 성립시켰다.
그리고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쓰고 도정(道政)에 참여, 감시하였으나 근본적인 시정개혁이 실현되지 않아 재궐기를 계획하던 중 일본이 청일전쟁에서의 우세를 이용하여 침략행위를 노골화하자 이에 격분, 재봉기하였다.
전봉준은 남도접주(南道接主)로 12만의 병력을 지휘, 북도접주(北道接主) 손병희(孫秉熙)의 10만과 연합하여 교주(敎主) 최시형(崔時亨)의 총지휘하에 항일구국(抗日救國)의 대일전(對日戰)을 시작했다. 한때는 중부, 남부 전역과 함남, 평남까지 항쟁규모가 확대되었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패배를 거듭하였으며 공주(公州)에서 일본군과의 대격전 끝에 대패(大敗)하고 10월 금구싸움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전봉준은 순창(淳昌)에 피신하였으나, 동지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어 일본군에 넘겨져 서울로 압송되고 재판을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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